고려 27대 충숙왕 = 도, 만, 의효 (재위 1313년~1330년, 복위 1332년~1339년)
충선왕의 서자로 어머니는 몽골인 출신 후궁인 의비 야속진이었다.
1313년(충선왕 5) 강릉대군으로 있다가 양위 받아 즉위하였으며, 아버지 충선왕은 상왕으로 있었다.
조카 연안군 고를 심양왕의 세자로 삼아 양위하고 원나라 양왕의 딸을 맞게 하였다.
이리하여 원나라 부마의 대우를 받게 된 심양왕 고는 왕위 찬탈의 뜻을 품고 충숙왕이 주색과 사냥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는다는 구실을 참소하여, 충숙왕이 원나라에 5년간 체류하였으며,
그때 왕인까지 빼앗긴 일이 있었다.
심양왕의 쿠데타 기도와 국내 친원세력의 암살 위협에 여러번 시달림을 당했다.
이러한 복잡한 사정으로 1325년에 귀국한 충숙왕은 심양왕 고에게 양위하려 했으나,
한종유 등 신하들의 반대로 취소하고, 왕자 정(=충혜왕)을 세자로 삼은 뒤 1330년 양위하였다.
그리고 원에 가서 부마 상주국 일수왕의 호를 받았다.
그러나 나이 어린 충혜왕은 수렵, 유희를 일삼고 소행이 옳지 못하자 원나라의 명으로 1332년 다시 복위되었다가 1339년 죽었다.
* 부 : 충선왕 * 모 : 의비 야속진
* 왕후 : 공원왕후 홍씨 (남양 홍규의 딸)
* 아들 : 28대 왕 충혜왕 / 31대 왕 공민왕
* 복국장공주 (원 세조 쿠빌라이의 5남인 영왕 야선첩목아의 딸)
* 조국장공주 (원 순종의 아들 위왕 에무게의 딸로, 쿠빌라이(원 세조)의 고손녀).
* 숙령공주, 몽골의 황족
* 휘령공주, 몽골의 황족
고려 28대 충혜왕 = 정, 보탑실리 (재위 1330년~1332년, 복위 1339년~1344년)
1330년 충숙왕이 원나라에게 폐위되자 즉위했지만, 1332년 원나라에 의해 폐위되고
충숙왕이 복위되어 다시 원나라로 갔다.
1339년 충숙왕이 죽자 심양왕 왕고를 왕으로 세우려는 조적 등의 반란이 있었으나 실패하고
충혜왕이 즉위했다.
즉위 후에 사치와 항락, 사냥을 일삼았으며, 흉흉한 민심과 소문이 돌았다.
특히 음탕한 행위를 많이 한 것으로 <<고려사>>를 통해 잘 알려져 왔는데,
결국 원나라에 의해 다시 폐위되어 원나라로 끌려가 게양현으로 유배를 가다가 악양현에서 죽었다.
독주를 마셨다고도 하고 귤을 먹고 죽었다고도 알려져있다.
* 부왕 : 27대 충숙왕 * 모비 : 공원왕후
* 비 : 정순숙의공주(몽골의 덕녕공주)
* 아들 : 29대 왕 충목왕 * 딸 : 장녕옹주
* 후궁 : 희비 윤씨 (파평 윤계종의 딸) * 아들 : 30.충정왕 * 손자 : 왕제
* 후궁 : 은천옹주 임씨 (별칭은 오지옹주, 사기옹주) * 아들 : 석기
* 후궁 : 화비 홍씨 (평리 홍탁의 딸, 홍대순의 종증손녀, 홍다구, 홍복원의 친족)
고려 29대 충목왕 = 흔, 팔사마내아사 (재위 1344년~1348년)
원나라에 볼모로 끌려가 있다가 8세에 원나라에 의하여 즉위하였으나 후사없이 요절한다.
집권기간 중 그의 모후인 덕녕공주가 섭정을 담당하였다.
충혜왕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원나라의 덕녕공주였다.
그러나 고려의 독립과 반몽 인사를 감시하기 위해 원나라 황제의 명으로 어릴 때 원나라 대도에 볼모로 잡혀가 있었다.
1344년(충혜왕 5) 충혜왕이 죽자, 고용보가 왕을 옹위하고 원나라 순종을 알현하였을 때
순종이 “그대는 아버지를 배우겠는가, 아니면 어머니를 배우겠는가?”라는 물음에 “어머니를 배우고 싶다.”라고 대답하자
순종은 왕의 천성이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고 찬탄하고 왕위를 계승하게 하였으니,
이때 나이 8세였다.
어린 나이로 즉위하였으므로 어머니인 덕령공주가 대신 정사를 맡아보며 전조의 폐정을 시정하였다.
권세가들에게 빼앗겼던 땅을 본래의 주인에게 돌려주었으며, 녹과전의 폐단을 시정하였다.
기근이 들었을 때 진제도감(을 설치하여 빈민을 구제하였다.
또한, 충선왕의 명으로 민지가 찬진한 《편년강목》을 증수시키고,
충렬왕, 충선왕, 충숙왕 등의 실록을 편찬하였다.
고려 30대 충정왕 = 저, 경창원군 (재위 1348년 ~ 1351년)
어머니 희비 윤씨는 파평 윤씨 찬성 윤계종의 딸로 고려 여인이었다.
태어나자마자 경창원군에 봉군되었고, 7세에 부왕의 죽음을 본다.
1348년(충목왕 4) 경창부원군에 봉작되었다.
그러나 이복 형 충목왕이 후사없이 죽게 되자 이복 형 충목왕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그의 뒤는 아들 왕제 대신 그의 숙부 공민왕이 차지하였다.
즉위 초반 원나라의 공주인 덕녕공주가 배후에서 섭정을 하려 하였으나
그의 생모인 희비 윤씨 및 윤계종의 친족들이 반발하였다.
외가 친척인 윤시우와 배전 등이 세도를 형성하여 정치가 문란해지고,
1350년에는 고려 국내에서 처음으로 왜구의 습격이 있었다.
왜구의 침입이 잦아 3년만에 1351년, 어린 군주가 계속 되는 고려의 상황에서 불만을 품어,
이때 충정왕과 함께 충목왕의 후계자로 물망에 올랐던 강릉대군에게로 민심이 쏠리자,
1351년 윤택, 이승로 등은 원나라에 투서를 보내 "충정왕은 나이 어려 국정을 감당할 수 없으니
폐위시켜 달라"고 원나라에 요청하였다. 이후 공민왕 옹립을 도모하는 원나라의 의해서 강화도에 옮겨졌다.
공민왕이 고려에 귀국한 후 그는 강화도로 추방당했다. 1352년에 자객에 의해 암살되었다.
후궁에게서 얻은 서자 1명인 왕제는 혈통을 이어 개성왕씨 시중공파의 파조가 된다.
* 부왕 : 충혜왕 * 모후 : 희비 윤씨
* 이복형 : 충목왕 * 이복누이 : 장녕옹주
* 비 : * 아들 : 시중공 왕제
* 숙부 : 공민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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