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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똘레도 대성당을 나와서 점심 먹으러 가는 길

벽도 길도 다 돌이다.

 

<알깐따라 다리를 건너서>

 

<알깐따라 다리>

똘레도를 부드럽게 감싸고 있는 타호강은 두 개의 커다란 바위암산을 사이로

그 폭이 줄어드는 곳에 알깐따라 다리가 있다.

알깐따라 다리는 똘레도 저항군과 아랍군 사이에 여러번에 걸친 싸움과 대홍수에

심한 훼손을 입었지만 다리 그 자체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알깐따라 다리에는 원래 마주보는 두 개의 탑이 있었는데

하나는 1721년 마차 등이 쉽게 통행할 수 있도록 헐리었고 그 대신 아치문이 설치되었다.

 

알깐따라 다리를 건너 보이는 집이 식당이다.

 

<똘레도 전경>

 

<알까사르>

 

로마시대 당시 성 수비대까지 거느리고 있었던 로마인들의 관아였다.

11세기에 이르러 알 폰소 6세가 똘레도를 수복한 후 알까사르를 재건축하게 되는데

유명한 엘 시드 장군이 이 요새의 첫 주인이 된다.

이후 많은 왕들의 거처로 삼았다.

또한 스페인 내란으로 폐허가 되었다가 지금은 박물관이 들어서 있으며

유명한 똘레도 검들도 전시되어있다.

 

똘레도에서 마드리드로 돌아와서 왕궁에 갈 계획이었지만 리비아의

카다피가 방문을 하여 국빈 만찬 관계로 문을 닫아 못 가보고

스페인 광장 앞에서 기념으로 사진만 한 장씩 찍었다.

 

스페인 광장 중앙에 석상이 있는데 멀리서 보았기에 윗부분만 보이는데

앞쪽에는 소설속의 주인공인 돈 키호테와 산쵸 빤사의 동상이 세워져 있고

세르반테스의 석상 뒤 탑 꼭대기에 있는 조각은

여러 민족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지구를 머리에 이고 독서에 열중인 모습이다.

바로 세르반테스의 돈 키호테를...

8박 10일의 여행을 마치고 이젠 집으로 돌아가야하는 날짜가 되었다.

우리나라가 스페인보다 시간이 빠르니 하루 손해보는 기분이다.

마드리드 출발 (18:00)  → 프랑크푸르트 도착(15:20)

프랑크푸르트 출발 (18:00) → 다음날 인천 도착

미하스에서의 비온 날을 제외하면 거의 맑은 날씨와 약간의 구름.

우기와 추운 날씨라 했는데 다행이 좋은 날씨가 되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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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현재 스페인 카톨릭의 총본산인 똘레도 대성당은 이슬람 왕국시절에는

회교사원이었던 곳인데 1086년에 카톨릭 성당으로 개조되었다.

화려하면서도 장엄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프랑스의 고딕양식을 기본으로 하고있다.

266년간의 공사기간을 거쳐 1493년에 완공되었으며

길이 113m, 폭 57m, 중앙의 높이가 45m 이다.

대성당의 내부는 22곳에 달하는 예배당과 신약 성경과 성도를 주제로 한

스테인드글라스, 보물실 등으로 구성되어있다.

 

<대성당 입구>

 

<사자의 문>

 

<대제단의 제단병풍>

 

<성가대실>

 

<보물실의 문>

 

<성체 현시대>

 

<성경책>

 

<똘레도 수호 성인의 황제관>

 

<프라이 안젤리코의 십자가>

 

<스테인드 글라스>

 

<파이프오르간>

 

 

<뜨란스빠렌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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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

똘레도 대성당에 가는 길에 있는 산또 또메 교회로 갔다.

스페인의 유명한 화가 엘 그레꼬의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이란 그림으로 유명한

산또 또메 교회는 세계의 관광객들이 이 그림만을 보기 위해 많이 찾는다고 한다.

그래서 교회도 유명해졌고.

 

오르가스 백작은 자신의 유산에 관하여 산또 또메 성당의 가난한 성도들과 승려단의

빚진 돈을 매년 갚을 수 있도록 유언장에 명시 해놓은

 가스띠야 왕국의 수석 공증인이며

똘레도 지방의 귀족이다.

 

이 그림은 오르가스 백작의 죽음 이후 그의 장례식에 관한 하나의 전설이다.

 

장례식에 참석하고 있는 사람들의 각각의 얼굴은 고요하면서도 사색에 잠긴 듯 심각한 표정들.

시신의 등을 받치고 있는 어거스틴 성인, 손으로 다리를 감싸고 있는 스테반 성인,

왼쪽의 햇불을 들고 있는 미소년은 엘 그레꼬 자신의 아들.

또 엘 그레꼬 자신의 자화상으로 스테판 성인의 머리 위쪽에 있는데 시선은

그림을 보고 있는 사람을 향해있다.

그 위로는 금발의 천사가 영혼을 갓 태어난 아이의 모습으로 그려 영혼이 하나님의 품속에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을 상징한다.

맨 위쪽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성모마리아와 세례요한으로 삼각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이렇게 이 그림은 신앙심이 투철했던 한 귀족을 기리기 위해 그려졌다.

 

다시 밖을 나와 똘레도 성당이 있는 곳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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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1492년에 입주.

그러니까 그 이전에 지어진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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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다시 마드리드로 이동.

 

<마드리드>

8세기 이후에 이슬람 왕국이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하여 똘레도와 마드리드를 포함하여

스페인 반도는 이슬람 왕국의 중요한 지역이 되기 시작했다.

알폰소 6세(1083년)때는 아랍인들로부터 마드리드를 탈환했다.

1492년 카톨릭 국왕부처에 의해 이슬람 왕국의 마지막 본거지였던 그라나다가 함락되었고,

같은 해 신대륙으로 가는 항로를 개척함으로써 스페인은 황금세기라 불리우는

전성기의 6세기를 맞게 된다.

마드리드는 16세기에 톨레도에서 마드리드로 수도를 옮긴 이후,

400여 년간 스페인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 역할을 담당해왔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마드리드는 유럽 문명과 오리엔트적 요소가 잘 결합되어 있어

그 매력을 더하고 있다.

그러나 신시가지에 들어서면 현대적인 빌딩거리가 펼쳐지며 교외에는 공장과 고층건물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어 주변으로 팽창해 나가는 대도시의 활기를 느낄 수 있다.

 

마드리드에서 자고 아침에 마드리드에서 똘레도로 1시간 정도 걸려 이동했다.

 

<똘레도>

수세기 동안 유지되었던 로마제국의 힘과 권력은 5세기부터 그 힘을 잃어가게 되었고,

이때 스페인 반도에는 비시고도족이 들어와 그 세력을 넓히게 된다.

결국 A.D. 418년 비시고도 왕국의 레오비힐도 왕은 똘레도를 수도로 정했다.

 

‘성으로 이루어진 도시’라는 뜻의 똘레도는

1561년 마드리드로 수도가 옮겨질 때까지 천년동안 스페인의 중심지였다.

타호강에 둘러싸여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똘레도는

오랫동안 이슬람의 지배를 받은 탓에

아직도 건물 곳곳에서 이슬람 문화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1492년까지 유대인이 거주한 흔적이 있다. 

 

<시내구경>

 

<비사그라 문>

시내로 들어오는 관문으로 통행이 가장 빈번한 곳이었다.

까를로스 5세는 똘레도 미화 작업을 결정하여 현재의 비사그라 문은

16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좀 높다는 생각은 했지만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갈 줄은 몰랐다.

에스컬레이터를 미처 세어보진 않았지만 10개 넘은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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